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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저수지의 개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뷔작, 왜 유명할까?

by life738 2023. 6. 22.

저수지의 개들

 

제목, Reservoir의 의미

영어 제목은 'Reservoir Dogs'이다. 이걸 직역해서 한국어로 '저수지의 개들'이라고 번역해버렸다. Reservoir를 직역하면 '저수지'가 맞다. 그러나 '창고'라는 뜻도 있다. 영화의 80% 이상이 주인공들의 집결지인 창고에서 일어나는 일로 진행된다. 그래서 '창고'라는 뜻에서 Reservoir일 텐데 번역이 이렇게 돼버렸다. 근데 '창고의 개들'이라고 했으면 밋밋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저수지의 개들'이 입에 착착 감긴다.

 

잡담

커피숍에서 주인공들이 7분가량의 긴 잡담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이런 잡담은 복선인 경우가 많아서 새겨듣게 된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잡담은 다르다. 실제로 친구들이 만나서 하는 영양가 없는 잡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는, 영화의 전개에 영향을 안 주는 잡담이다. 그렇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가?

말 자체엔 의미가 없지만, 관객은 잡담을 들으면서 인물들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인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지 않느냐. 일상에선 당연한 건데 영화를 만들 땐 이런 무의미한 잡담을 넣기가 쉽지 않다.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선례 없이도 7분간의 대화를 의미 없는 것들로 채울 수 있을까 싶다. 영화의 전개에 필요한 복선이나 암시를 넣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연출 순서(스포 O)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커피숍에 모여서 팁에 대한 잡담을 나눈다. 특히 웨이트리스(여성 종업원)는 팁을 받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장을 입고 이런 얘기를 나누니 뭐라도 되는 사람들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이들 중 2명이 차를 몰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온다. 한 명은 총상을 입고, 곧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른다. 7분가량의 긴 잡담 장면 뒤에 갑자기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왜 도망가고 있지? 이에 대한 답, 즉 이들이 보석상 강도라는 사실은 금방 나온다. 그러나 곧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경찰의 끄나풀이 있을까? 있다면 누굴까?

보석상을 털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흩어진 강도들은 집결지인 창고에 서로 다른 시간에 도착한다. 한 명 한 명이 도착할 때마다 분위기가 휙휙 바뀐다. 관객에게 필요한 정보(회상 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있다. 

 

 

영화가 유명한 이유

<저수지의 개들>은 imdb에서 전체 영화 중 95등이다.(기생충은 35등이다) 왜 이렇게 유명할까? 연출 순서가 돋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재미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엔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남다르다. 7분가량의 쓸데없는 잡담이 나온다. 관객들은 피곤하게 그 안에 숨은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없다. 개소리니까. 그냥 우리가 친구 만나서 하는 쓸데없는 말들이 오간다. 머리 아프게 잡담을 분석할 필요 없이, 영화의 흐름은 시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분석하면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음악을 활용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그냥 신난다. 영화의 중반부에 미스터 블론드가 경찰을 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잔인하긴 하지만, 여기서도 음악이 신난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폴 앨런을 죽이기 전 노래를 틀고 춤을 추던 크리스천 베일이 생각났다.(물론 <저수지의 개들>이 먼저 개봉한 영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재밌기 때문에 유명하다. 영화에 의미 부여하며 재미보다 이데올로기를 중요시하는 요즘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옛날 영화를 찾아보게 된다. 영화는 일단 재밌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덜 불쾌한 폭력 영화(스포 O)

미스터 화이트와 미스터 핑크가 창고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기억해보자. 이들이 착한 사람인데,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후 드러나는 회상 장면을 보면 이들은 그렇지 않다. 미스터 화이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찰 두 명을 총살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잡담을 나누는 등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유일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미스터 오렌지이지만, 그도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긴 했다.

영화에선 죄를 저지른 모두가 죽는다. 그래서 덜 불쾌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다른 영화도 많은 인물이 죽지만 적어도 죄를 지은 사람이 당당하게 살아나가는 장면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성이 강한 영화임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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