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러나지 않는 계급
영화에선 무의식적인,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민혁은 "우리 과 공대생 그 늑대 새끼들"이라고 말하며 기우에게 다혜의 과외를 맡긴다. 같은 과의 같은 계급의 학생들은 부잣집 딸인 다혜를 넘볼 테지만, 계급이 낮은 기우는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동익과 연교는 윤 기사가 차량에서 여자친구와 관계를 가졌을거라고 의심한다. 연교는 "어떻게 주인님 차에서!"라고 말한다. 동익은 기택의 "그래도 사랑하시죠?"라는 말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보편적인 아내와의 갈등과 사랑에 대한 감정을 물었지만, 동익은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기택의 공감이 불쾌하다.
기택은 근세에게 "당신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계획은 있어?"라고 말한다. 충숙은 문광의 "돕고 살아요, 같은 불우이웃끼리"라는 말에 "나는 불우이웃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도 공감을 거부하며 계급을 나누려고 한다.
동익과 연교의 배드신이 나온다. 동익은 연교가 기정이 차에 흘린 팬티를 입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이전에 윤 기사가 마약을 한 거면 어떡하냐는 말을 했던 연교는 동익에게 마약을 사달라고 말한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계급을 나누며 자신들과 나머지 사람들을 구분하지만, 결국 모두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지하철을 안 타본 경험 등으로 알 수 있듯이 살아온 환경이 달라 무의식적으로 계급을 나누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을 나누는 사람을 비판하는 용도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계급을 나누게 만드는 사회를 소개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빈자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장면뿐만 아니라 빈자끼리도 불쾌감을 느끼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기택과 근세
기택은 근세와 매우 유사하다. 기택은 치킨과 대만 카스테라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반지하에 사는 신세가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근세 또한 대만 카스테라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빚쟁이들을 피해 지하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근세에 대한 이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기택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결국 둘은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러나 기택은 근세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계획은 있어?"라고 묻는다. 기택은 분명 근세가 자신과 유사한 처지라고 느꼈지만, 그것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 때문에 근세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이는 동익이 기택에게 느낀 불쾌감과 같다. 계획이 있냐고 물을 때의 기택에겐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기택 또한 계획이 없어진다. 이후엔 근세와 마찬가지로 지하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누굴 위한 영화인가?
기택은 "경비원 한 명만 뽑아도 4년제 대학 졸업자가 500명씩이나 몰려드는 이 시대"라고 말한다. 대학 졸업자의 비율이 70%를 넘어갈 정도로 포화 상태이다. 이제 더 이상 대학 졸업은 플러스 요건이 아닌 기본 요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1년에 3000만원의 학원비를 통해 대학에 가고, 400만원가량의 등록금을 매 학기 내며 대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구할 기본 요건이 충족된다. 동익은 일할 아줌마는 얼마든지 있다며 문광의 해고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넘쳐나는 대학 졸업자들 중 가정부 하나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다.
작중 기우는 4수를 하며 입시에 도전했다. 기정은 입시를 위해 미술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기택과 근세는 대만 카스테라 사업을 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동익의 집의 지하실에서 근세가 보고 있는 책은 법학 관련 책이다. 이들은 모두 배움의 기회가 있었고, 사업의 기회가 있었던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또한 동익이 기택에게서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지하철은 차가 막히는 서울로 오가는 사람들은 재력에 상관없이 많이 이용되는 이동 수단이다. 영화는 우리와 거리가 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흔히 영화를 보고 불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불쾌함이 최고점에 도달하는 장면은 동익이 지하철 냄새에 대해 언급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기택이 자신의 옷에서 지하철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는 장면에서 다양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반지하와 지하철 냄새로 표현된 가난의 상징이 우리한테도 있을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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