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
영화의 제목 '위플래쉬'는 채찍질이라는 의미이다. 영화의 흐름상 경쟁과 폭력을 통한 채찍질을 의미한다. 플래처는 네이먼에게 다른 드러머와 주전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시키고, 뺨을 때리거나 욕을 하는 등의 폭력을 통해 채찍질한다. 네이먼이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결국 네이먼이 성장하며 영화가 끝난다. 그러나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쟁과 폭력을 통한 채찍질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을 이루어낸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아메리칸 사이코>를 사이코패스의 연쇄살인 영화로, <파이트 클럽>을 반사회 집단의 테러 영화로, <기생충>을 가난한 사람의 부자 살인 영화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해이다.
감독은 과도한 경쟁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경쟁과 폭력을 통한 교육은 옳은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행복이 주변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라면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행복이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면 영화는 배드 엔딩이다. 두 가지 관점의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의견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전자를 겪어본 후의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도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성공하면 행복할까?
엔딩 장면에선 플래처의, 한계를 넘도록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교육 방식이 네이먼의 성장을 이끌어낸다. 네이먼의 성공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우리가 이입해서 보던 주인공이 성장하며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는 착각이 든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네이먼이 드럼 연주에 몰입하는 장면을 보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이다. 플래처의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네이먼의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플래처의 이전 제자인 션 케이시는 음악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 때문에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다 자살했다. 네이먼도 결국 드러머로서 성공하겠지만, 그의 미래는 뻔하다. 엔딩 장면에서 네이먼의 아버지는 플래처와 공명하는 네이먼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네이먼은 여자친구도 잃었고, 사회성도 없어졌다. 차라리 성공하지 못한다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 후 아무도 남지 않은 주변을 돌아본다면, 션 케이시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네이먼은 행복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플래처의 교육법을 따른다
고2 때 같은 반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중에 트럭을 피하다 넘어졌다. 얼굴을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쳐서 눈을 다쳤다. 병원에 안 가고 공부하다가 오후에 눈이 보라색으로 판다처럼 부었다. 선생님이 병원에 가라고 하자 공부할 시간을 뺏겼다고 문을 걷어차더라. 그 친구는 공부에 방해되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다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 불행해 보였다. 극 중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드럼에 인생을 건 네이먼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친구가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면 행복할까, 네이먼이 드러머로서 성공한다면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나도 친구보다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있으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깨달았다. 그러나 이렇게 경쟁에 집착하는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분위기는 이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이번 1학기 동안 매일 같이 공부한 대학 친구가 있다. 공대 3학년인데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자기 동기들은 새벽 3시까지 공부한다며, 자기는 열심히 안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열심히 안 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더라. 극 중 플래처는 실수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쫄아 실수했다고 말한 살찐 학생에게 인신공격하며 쫓아낸다. 다른 단원들은 이에 "군것질할 시간에 연습이나 좀 하지."라고 말하며 그의 책임으로 돌린다. 학생 중 누구도 플래처의 교육 방식을 탓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사회가 아닌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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